1. 그녀는 아이가 참 싫었다.
그녀는 아이가 싫었다. 2시나 3시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는 늘 옆집 아줌마와 2살짜리 아들이 와있었다. 어느 날은 옆옆집의 아줌마와 3살짜리 아들도 와있었다. 그녀의 동생이 그 또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이웃집이고 또래끼리 어울리다 보면 그들 중 누군가의 집에서 잠시 놀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그 누군가의 집이 늘 그녀의 집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것이 단지 오후 몇 시간뿐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로 그래줄 수가 없었다. 그 옆집 아줌마는 매일같이 아침부터 쳐들어와서 그녀의 엄마가 차려주는 점심을 먹고 오후 내내 그녀의 집에서 빈둥거리고 놀다가, 어느날은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까지도 먹고 돌아간다.
그 옆집 아줌마의 아들 뒤치닥거리까지 그녀의 엄마가 해준다. 그 아들은 투실투실한 외모만큼이나 또 어찌나 욕심 많고 극성스러운지, 그녀의 동생 물건들을 욕심내서 가지고 놀다가 부서뜨리기까지 한다. 그럼 그녀의 동생은 자기 거라고, 자기가 가지고 놀 거라고 울고, 부서졌다고 울고. 그럼에도 그녀의 엄마는 동생보고만 양보하라고 한다. 옆에서 지켜보다 못해 그녀가 나서기라도 하면 그녀의 엄마는 또 그녀를 나무란다.
그러고 나서, 그 옆집 아줌마가 가고 나면 그때부터는 그녀의 엄마는 그날 일들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놓기 시작한다. 그 옆집 여자는 왜 그렇게 뻔뻔하냐, 염치가 없다, 아들도 엄마를 닮았나 보다, 힘들다, 내일은 좀 안 왔으면 좋겠다 등등. 그녀는 그게 또 그렇게 듣기 싫어 쏘아붙인다. 엄마는 왜 그걸 그 아줌마한테는 한마디도 못하고 그러냐고, 나이도 엄마가 한참이나 많은데 왜 그냥 다 참고 지금 이러냐고. 동생이랑 그녀가 뭘 잘못했다고 그 앞에서 우리만 혼내냐고. 그러니 그 아줌마가 본인 잘못도 모르고 계속 그러는 거 아니냐고. 그러면 그녀의 엄마는 '야박하게 어떻게 그러냐, 손님 아니냐'라고 응답한다. 그걸 거의 매일 반복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옆집 아줌마는 거의 일년을 그렇게 그녀와 그녀의 엄마와 동생을 괴롭히다가 이사를 갔다. 그 뒤로 다시는 안 오는 걸로 보아 어딘가 먼 곳으로 갔나 보다, 너무 다행이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옆집 아줌마가 없어지자 옆옆집 아줌마도 더 이상 옆집 아줌마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 주로 밖에서 같이 놀거나, 그녀의 집에 오더라도 오후에 1~2시간 정도 놀다가 가고는 했다.
어쨌든 그 일을 겪고, 그만큼 심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일을 몇 차례 더 겪으면서, 그녀는 아이가 싫어졌다. 그냥 싫은 정도가 아니라, 혐오 그 자체였다. 아이를 보고 이쁘다, 귀엽다 하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어쩌다 지나면서 보는 수준이었다면 그들처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10대 초중반에 겪었던 그 아이들은 그저 괴로움과 귀찮음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커서 결혼은 해도 아이는 갖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2. 그녀는 아이가 참 예뻤다.
오늘 저녁 메뉴는 '청양고추 간장양념 달걀범벅 닭고기 볶음밥'이다. 사실 그녀는 종일 바쁘게 일했고 오늘따라 회의도 많아서 유난히 피곤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을 보니 피로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오늘 저녁은 뭘 해줄까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앞치마를 하고, 그녀가 없는 사이 어지러워진 식탁 위를 청소한다.
그저께 밤에 시켜먹은 치킨이 남아있다. 아이가 싫어하는 뻑살만 남아있다. 저걸 버릴 수도 없고, 그냥 둬도 안 먹을 테고 어떻게 하지? 이러한 고민 속에 탄생한 오늘의 새로운 메뉴가 바로 '청양고추 간장양념 달걀범벅 닭고기 볶음밥'이다. 그녀의 음식솜씨는 제법 괜찮다. 처음 하는 음식도, 대충 집에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도, 온 가족이 맛있다고 한다. 엄마의 예민한 후각과 아빠의 뛰어난 손재주를 물려받은 덕분이라고 그녀는 감사해한다. 실제로, 그녀의 부모님도 음식솜씨가 뛰어나시다.
아이는 오늘도 그녀가 해준 밥이 맛있어서 '오물오물' 맛나게도 씹어먹는다. 그 작고 빨간 입술이 어찌나 이쁜지, 안그래도 젖살 어린 통통한 볼따귀가 볶음밥으로 가득 차 터질 듯 귀엽다. 그녀는 그런 그녀를 흐뭇한 미소로 빤히 바라본다.
"엄마, 왜에?" 아이가 밥을 씹다 말고 물어본다.
"엄마는 고슴도치 인가봐~" 그녀가 대답한다.
"응? 왜?" 아이가 다시 물어본다.
"너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이쁘다는 속담 알지? 네가 엄마 눈에는 너무 이뻐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대답하자, 아이도 해맑게 씨~~ 익~~~ 웃는다.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그렇게도 아이를 싫어했었는데, 절대로 아이는 갖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을까. 내 핏줄이면 그냥 이렇게 바뀌는 것일까? 아니다. 핏줄이어서 그런 건 또 아닌 것도 같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남의 집 아이들도 참 예쁘다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번씩 아이가 그녀를 속상하게 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보면 그냥 참 이쁘다는 감정이 솟아오른다. 도대체 무슨 이유이지?
그러다 그녀는 또 한가지가 생각났다. 그녀가 아이만 했을 때, 그리고 더 어렸을 때, 심지어 몇 달 전에도, 그녀의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보기만 해도 이쁜 내 딸'이라고. 언젠가 그녀의 엄마가 그런 말도 한 적이 있다. '네 친구들도 다 너같이 마냥 이쁘다'라고. 그런데 부부일심동체인 걸까? 그녀의 아빠도 가끔 그녀에게 말한다. '내 딸이지만 잘 생겼다'라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딸한테 이쁘다고 해야지 잘 생겼다고 하면 어떡하냐'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빠가 '이쁘다'는 의미로 말한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릴 적 친구를 집에 데려가면, 아빠도 흐뭇한 미소로 '잘 놀다 가라'라고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녀의 친구가 '네 부모님은 참 인자하신 것 같아 부러워'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아, 그건가? 엄마로부터, 아빠로부터 배운건가? 아니 음식솜씨처럼 그냥 물려받은 건가? 엄마/아빠라는 고슴도치의 후예인가? 이유가 무엇이든, 그녀는 아이가 옆에 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그 행복감, 흐뭇함, 충만함이 감사하다. 그녀는 아이를 통해 느끼는 그 감정들은, 취미생활을 하거나 좋을 일이 생겼을 때의 그 느낌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부로부터 차오르는 듯하면서, 뭔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했다.
그녀는 아이가 없었더라면, 그 간의 힘겨운 삶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다음 생이 있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은 안하더라도 아이는 꼭 가질 거라고. 요즘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면, 아직 미혼인 젊은 사람들에게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아이는 꼭 가지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속상하거나 힘들 때도 많지만, 그걸 모두 상쇄시켜 줄 만큼 이전에 가져보지 못한 새로운 기쁨을 느낄 것이라고 덧붙인다.
자정이 넘은 지금도, 그녀는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뭔지 모를 따뜻함이 가슴속에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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